문화

불교란 가짜를 경계하고 진짜를 추구하는 진리 단체

네모난 천사 쾌타천 2021. 10. 27. 19:45
728x90

불교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무엇이 진짜 나의 감정이고 무엇이 나의 가짜 감정인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하여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끊임없이 깨어서 경계하여 가짜를 경계하고 진짜를 추구하는 깨달음이라는 분별력을 얻기 위한 종교입니다.

스님들은 그런 가짜를 경계하고 진짜를 추구하는데 걸림이 되는것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속세를 떠나고 머리를 깍고 명상 수행을 하는 행위로 이어지게 되는것입니다. 머리는 신장의 수기와 관련 있는데 머리를 깍는다는것은 수행에 방해가되는 육신의 정욕과 탐툑을 저거한다는 일종의 의식이고 각오인것입니다. 한마디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기전에는 세속적인 관심을 끊겠다는 절연한 의지의 표현인것입니다.

깨달음이란 분명히 존재한답니다. ^^

해탈의 경지란 모든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이 속임수 거짓말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고 모든 음모에서 비롯되는 속임수와 거짓말의 무의미함을 알아 더이상 음모를 꾸미지 않으며 음모에 동참하지 않고 순리라는 거대한 옳곧은 흐름에 동참한 상태가 해탈의 상태입니다.

단순히 감각적 감성적으로 해탈했다고 말하고 판단하는것을 엄밀히 경계해야 합니다. 누구나 해탈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탈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나 해탈할 수 없다는 말은 누구나 해탈의 기회는 있지만 올바른 노력 없인 해탈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 번뇌 망상은 사라질수 없습니다. 깨달음을 얻고 해탈한다하여 번뇌망상이 사라지것이 아닙니다. 번뇌망상이 사라졌다고 하는건 감각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것이고 이미 번뇌 망상에 넘어간 상태입니다. 잔정한 깨달음 해탈이라는건 번뇌망상에서 자유로와지는 것이지 번뇌망상에서 벗어나 번뇌망상을 회피하는게 아닙니다. 깨닫고 해탈한 자에겐 번뇌망상이 더더욱 광폭하게 몰아부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태풍의 눈처럼 번뇌망상으로부터 큰해를 받지 않고 오히려 번뇌망상에 긍정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세상사람과 함께 더불어 번뇌망상에서 자유롭게 화평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깨닫고 해탈한자에겐 더더욱 크고 강력한 번뇌망상이 일어난다는걸 명심하십시요. 세상고통 괴로움을 회피하기 위해 깨달음을 추구하는게 거짓이고 위험한 이유입니다.

불교 말씀을 들을 때 항상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면 끊없이 마에 빠질 뿐입니다.

해탈하는 방법은 모든 음모를 때려치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어떤 음모든 자기 안에 일말의 음모라도 존재한다면 절대 해탈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음모를 때려치고 음모와 완전히 끊어져야 순리에 동참하게 되고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면을 쓰며 자기만의 음모를 꾸미며 살아간다는것을 명심하십쇼. ^^

그 불성이란것을 의로움이라 합니다. 물론 사탄 안에도 의로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모든 존재를 의로움을 기초로 창조하셨거든요. 근데 사탄은 교만하여 의로움을 거부하고 변질돼 타락한자의 상징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영원히 하나님의 타락천사로써 영원한 하나님의 종일수 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목적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게 각성시키는 것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 못하면 깨달음을 얻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각성상태 곧 순수한 깨어있음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깨어있으라 한것입니다. 가짜가 진짜행세하는데 깨어있지 못하면 가짜를 진짜로 숭배하고 진짜를 비천하다 멀리하고 멸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교만하여 사람이길 포기하고 자기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징승을 숭배하여 인당의 제삼의 눈에 정삼각형 666표를 받고 짐승이 되어 쉼없이 자기 죄악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살수 밖에 없게 되니 그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래서 짐승이라 합니다. 창주주 하나님을 모독하고 사는건 겉으로는 나는 당당하다 강력하다 하지만 실은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살수 밖에 없으니 그들은 쉼없이 밤낮으로 영원히 울부짖게 된 자들입니다.

그럼 진짜와 가짜가 뭐냐!? 진짜는 곧 자기안의 의인 예수님을 받아드리고 부정하지 않는 의인입니다. 가짜는 뭐냐 자기 안의 의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금욕고행하며 자학하여 하나님의 경건한 사랑의 채직질인 죄를 모독하고 범하는자들입니다. 그들은 참회하고 회개한다며 스스로를 자학하고 학대하며 나는 반성하고 있다 참회하고 있다며 거짓말 하는자들입니다.

이런 가짜들은 스스로를 깨달은 자처럼 경건한 척을 하기도 하며 선한척을 하기도 하며 구원자 행세를 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가짜는 진짜 행세할수 밖에 없거든요. 진짜행세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고 모욕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자들입니다. 그런자들이 결국 짐승 666이 됩니다. 끝까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고 저주하기를 되돌리지 않기 때문이죠.

아무튼 결론은 가짜는 한둘이 아니고 그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러니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분별 못하면 끝없는 논쟁과 말싸움뿐입니다. 그런 끝없는 논쟁과 말싸움을 불러일으키는게 곧 가짜들의 낙이고 즐거움이죠. 아무쪼록 불교에 속하신다면 가짜를 경계하고 진짜를 추구해야합니다.자기 안에서 항상 가짜의 감각 가짜의 욕구 가짜의 생각이 만들어집니다. 깨어있어서 그 가짜들을 관하여 분별하여 멀리하지 않는다면 진짜 깨달음읓 얻지 못하고 결국 깨달았다는 마에 빠지게 될겁니다. 깨달음은 분명히 존재하니까 한번노력해보세요 ^0^

진리를 비꼬고 어긋장놓고 조롱하는 태도는 스스로에게 아무런 이득이되지 않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