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관관계 법칙

자신감과 자기확신의 분별

네모난 천사 쾌타천 2021. 12. 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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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심감이란 난 이런 사람이야 나 누구누구야 하는 이미지에서 만들어지는 허상입니다. 그런 사람은 실제론 자신도 없고 나약하면서 나는 강해 나는 위대하다며 스스로를 속이며 자기 최면을 거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심이 없어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나 평판에 목숨을 겁니다. 바보들이죠.

 

남을 신경쓰지 말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남을 신경쓰지 않으면 왕따나 진따 외톨이 괴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인을 신경쓰고 사람 무서운줄 알고 예를 갖추고 배려를 해야 합니다.

남을 신경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남을 눈치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눈치를 본다는건 곧 눈을 홀기면서 너 다음엔 두고 보자!! 이런 마음으로 억지로 매너 있는척 예의 바른 척 착한척 친한 척 하는게 눈치를 보는 겁니다. 눈을 흘기면서 너 나중에 내가 잘되고 너 망하면 두고 보자 하는 식으로 저주를 하는게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눈치를 보면 볼수록 무신경해지고 더더욱 사람 무서운줄 몰라지고 배려심도 떨어집니다. 반면에 사람 무서운줄 알고 예를 갖추는 사람은 당연히 더더욱 다른 사람이 신경이 쓰이면서 배려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결국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인지라. 자기가 진짜로 싫은건 다른 사람도 진짜로 싫고. 자기가 진짜로 좋은건 다른 사람도 결국 진짜로 좋아하기 때문이죠!! 자기가 싫은 건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면 안됩니다. 그렇기에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하는거죠!!

그리고 자기가 좋은건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입니다.

남을 신경쓰지 말라는 말을 올바르게 해석한다면, 중심을 타인에게 두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두라는 뜻입니다. 무술 용어로 이것을 중선이라고 합니다. 자기 중심을 잃어버리면 선을 넘어버리고 사고를 치게 마련이죠!! 그래서 항상 중심을 자기 자신에게 두고 깨어서 타인을 신경쓰고 배려해야 합니다. 선을 넘어버리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아무리 친한 가족과 연인 또는 친구라도 선을 넘으면 관계가 파탄납니다, 가까운 사이일 수록 각자의 영역을 더더욱 존중해야 합니다. 각자의 영역은 가족 친구 연인 동료라도 침범되어서는 안되는 프라이버시입니다.

자기 중심을 지키면 자존감이 됩니다. 그런데 자기 중심을 잃어버리면 그것이 자신감으로 변질됩니다. 자신감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신감이란 자기 중심을 잃고 선을 넘을 때 생기는 교만하고 오만한 잘난 마음입니다. 자신감이 없고 불안한게 정상적입니다. 그때 자기 중심을 지키고 최선을 다하면 자신이 생깁니다. 자신이 생긴다는것은 신명이 나는 것입니다. 자신이라는 신명이 생기면 지더라도 졌잘싸 할 수 있기 때문에 지는걸 두려워하지 않고 더더욱 전진해 나갑니다. 이것이 진짜 자신 있는 것입니다.

자존감이란 자기 중심을 휘둘리지 않고 지킬때 자존감이 생기고 자신감이란 그럼 자존감의 바탕아래 괜찮아 져도 괜찮아 나다웠어 괜찮았어 그런 졌잘싸 할 수 있을때 그것이 진정한 자신감입니다. 보통은 난 이길 수 있다 자신감 있다 이런간 자신감이라 생각하지만. 진짜 자신감은 괜찮아 져도 괜찮아 최선을 다하자!! 이게 진짜 자신감입니다. ^^

강녕하시길!!



스스로에게 항상 솔직하고 겸허해지세요. 스스로의 못남 모자람 나약함에 솔직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용기가 될것이고 그것을 받아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존재하지 않는 자심감이 아니라 존재하는 자기확신이 될것이고 그것이 진정으로 힘있고 능력있는 길로 이끌어 줄겁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게 모든 성장과 발전의 시작입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는자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불교에선 스스로를 관한다고 그러죠. 스스로를 관하면 자기 안의 본체 곧 영혼를 봅니다. 근데 사실 그 본체는 현실의 주인이고 육신의 주인으로서 아무아무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기 본인입니다. 근데 관할때 본체가 육신에 투영된 나로서 내부를 관하여 본체를 봅니다. 곧 그게 육신으로 투영된 본체의 나가 육신을 꿰뚤어서 내면의 실제 나인 본체를 보는거죠. 육신의 나를 에고라고 부르기도하고 내부의 영혼 본체를 본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수련과 수행으로 육신의 나가 내부의 본체를 보면 견성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동양적으로누그 외면의 나를 에고라 부르며 까짜 나라부르고
내면의 나를 찐짜 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진아나 가아 나 결국 다똑은 나의 투영된 모습임을 깨닫고 너털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거죠. 깨닫고 나면 아! 나 자신과의 싸움이 부질없고 어리석은거였구나 하며 쉼을 얻게 되는것이죠.

by chulpo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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