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관관계 법칙

누구나 각자의 행위를 반복해 나간다. 업보- 매트릭스

네모난 천사 쾌타천 2021. 11. 17.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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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속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문제없이 살아가죠. 사회적 표면적으로는 아무문제 없는거 같아요. 마치 매트릭스 안에 사는 사람들처럼요. 그런데도 뭔가 공허하다면 느낌이 든다면 본질적인 갈망이 채워지지 않는거에요. 그리고 표면적인 행동은 공허할 뿐이죠. 진짜 화평 진짜 인간관계가 아니면 공허하기 마련이에요. 대부분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요. 데카르트가 말하죠. 대부분은 서로 서로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가면 속의 삶은 공허할 뿐이죠. 그렇다고 서로 가면을 벋고 서로 마음을 내놓을 용기도 없어요. 그래서 서로 서로 가면을 쓰고 서로 인정하고 칭찬하며 매트릭스 속에 살아갑니다.

이런 행위없는 표면적인 삶은 이득이 없기 때문에 가치를 못느끼고 공허한겁니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뿐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시작이죠. 이 세상과 이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님께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걸 원치 않을 겁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님을 속일수가 없게 되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덩어리에서 벗어나 돌맹이의 길을 갈수 밖에 없습니다. 돌맹이의 길은 덩어리라는 울타리 매트릭스를 벗어나기 때문에 다소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뭐 선택은 각자의 목이죠.

오해하지 말아야 할것은 스스로 솔직해야 하는것은 행동이 아니라 행위여야 한다는 겁니다. 행동은 속임수와 거짓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행동으론 그 사람의 정체성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행동이란 얼마든지 꾸미는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위는 틀립니다. 행위는 꾸며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분분의 사람은 자기 행위를 모릅니다. 아니 알면서도 스스로를 속입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행위를 판단해주고 교정해주는 사람을 스승이라 한합니다.

누구나 각자의 행위를 반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반복되는 행위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이 달라지고 그 사람의 길흉화복이 달라집니다.사왜냐면 그 반복되는 행위과 바로 업이요 업보이기 때문이다. 고로 누구나 영원히 자기 행위를 반복할수밖에 없고 영원히 자기 업과 업보로 부터 벗어날 수 없으니 그것을 자기 직업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각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받는다 하였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선한척 의로운척 행위를 가장하여 행동을 하여도 그 행동으로 받는게 아니라 행동 속에 감추어진 본질적인 행위대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의로운 행동 선한 행동을 많이 했는데 왜 내가 이런 벌을 받냐고 신세한탄한다면 당신의 그 선하고 의로운 행동 아래 본질적인 행위가 아주 사악하고 악랄한 범죄이기 때문에 당신의 그 행위에 따라 벌은 받는거라고 노골적으로 말해주고 싶습니다.

누구나 각 자의 행위를 영원히 반복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본디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알게 모르게 무의식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위를 업이라 합니다. 그 업보에서 그 누구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업보란 결국 자기의 직업이거든요. 자기의 행위를 올바르게 반성하고 회개할때 비로서 업보가 제자리를 찾고 스스로의 자산이 되기 시작합니다. 자기 죄악의 행위를 참회하지 않으면 업보란 짊덩어리에 불가하죠. 그 업보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수련과 수행을 해도 그 누구도 업보에서 벗어나는건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업보란 각 사람의 의로움의 인과율 즉 인과응보거든요. 그 누구도 인과응보로부터 벗어날수 없습니다. 심지어 창조주인 하나님과 예수님조차도요. 그야말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각 존재가 영원히 각자의 행위대로 받는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모든 원인은 오로지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말씀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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